참으로 오랫만에 주말을 느긋하게 보낼 수 있게 되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중 몇몇분의 흔적이 남아있는
남도지방 몇곳을 어제 다녀왔습니다.
사천 숙소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삼천포 시내에, 다도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야트막한 동산(노산공원)이 있고, 한켠에 '박재삼 문학관'이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삼천포 갯가 찟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고등학교때까지, 막노동과 생선행상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공부하며 시인의 꿈을 키운,
슬픔의 연금술사 박재삼 시인을 생각하면서 문학관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1962>
시는 역시 우리 민족의 정서... 슬픔과 한을 노래하는 전통 서정시가 제맛이네요.
**************
섬진강변 하동 화개장터와 쌍계사, 구례 화엄사쪽은 때가 때인지라 무지 붐빌 것 같아,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님이 태어나신 순천 선암사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 투쟁 근거지로 소개된 조계산 정상에서
서쪽 능선 계곡에 송광사, 동쪽 능선 계곡에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한때 법정스님이 머물렀다는 송광사는 조계종 산하의 이름난 사찰이지만,
선암사는 태고종 본산으로 명성이 높은 절입니다.

대웅전은 초파일 공사관계로 찍지 못하고 일주문 앞에서 한컷 박았습니다.
뒤에 '태백산맥'에 나오는 조계산 정상이 보입니다.
때가 너무 늦어, 그 유명한 선암사 홍매화의 운치있는 만개모습은 보지 못하고...
사진은 겹벚꽃입니다. 스님 말씀으로는 벚꽃은 홑벚꽃, 겹벚꽃, 능수벚꽃 등등 6종류 정도
있다하네요.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라는 시를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분위기 있는 산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시에 나오는 해우소입니다. 근심, 걱정 많은 우리네 삶... 눈물이 나면... 선암사 해우소에서 가진 것을 모두 비우고 ㅎㅎ 실컷 울어버리라네요...
******************
여수에서 돈자랑 하지말고, 순천에서 인물자랑 하지말고, 벌교에서 주먹자랑 하지말라는, 그 유명한 벌교읍을 찾았습니다. 요즘 나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인데, 그 소설의 주된 무대가 벌교입니다.
소설속의 주요 등장인물 염상진, 하대치, 안창민, 김범우 등의 체취를 맡을 수 있을까해서... 민족사의 비극의 현장(여순반란사건)에 서서, 그때 그 분위기를 혹시나 느낄 수 있을까 해서... 읍내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만... 빨치산, 토벌대, 계엄군... ㅎㅎ 격세지감입니다. 소설속의 시대배경과 60여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변했군요.
 마침 읍내 회정리에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이 자리하고 있어 그곳을 방문하여 많은 자료들을 보노라니 마치 내가 소설속에 들어간듯...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문학관 바로 옆에 위치한 소설속에서 무당 소화가 곁붙어 살았던 몰락한 '현부자집'을 구경하였습니다.
 어디가나 상술은 기발하네요. 문학관 앞에 위치한 '태백산맥 화이트하우스'. 1층은 '현부자네 꼬막정식집'. 2층은 '소화찻집'... 벌교 가면 꼬막요리는 꼭 먹어보라는 말도 있고해서리... 늦은 점심을 여기서 해결했는데, 꼬막정식 1인분 12000원으로 가격은 약간 센편이지만... 꼬막무침, 꼬막숙회, 꼬막전 그리고 나물을 위주로한 13가지 반찬이
맛나고 푸짐하군요. 내친 김에 소화찻집에 올라가 예쁜 무당 소화가 정감 넘치는 남도사투리를
섞어 가며 친절하게 서빙하는 우리 전통차를 한잔 마셨습니다.
*************
식사를 마치고 발길을 서둘러 김영랑 시인의 고향 강진을 찾았습니다. 마침 강진군청에서 주관하는 영랑문화제가 열리는 중이라 영랑생가와 영랑
문학관은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영랑생가에서 기념사진 한장 박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행들과 항꾼에 다니는데... 장산이만 애인 없이 혼자 다니는군요 ㅎ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1935>

생가 한켠에서 얼굴도 목소리도 고운 색시들이 멋진 가락을 연주하며 창을 합니다.
한국 서정시의 맥은 소월-영랑-목월-미당-박재삼으로 이어지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 중 두분의 고향을 방문하고 그분들의 생가에서 조금이나마 그분들의 체취와 시심을 느끼며 함께 한 시간들이 행복하였습니다.
친구님들! 휴일 편안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