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살아있는 흙 - 그릇 14 / 오세영

와우산 2011. 10. 27. 16:06

살아있는 흙 - 그릇 14      오세영

 

차라리 깨진다.
바닥으로 밀려난 그릇.
자리를 찾지 못한
인생은 서성이는데,
손님은 아직도
밀려드는데,
잔칫상 모퉁이에서
바싹
깨지는 그릇.
자리에서 밀린 그릇은
차라리 깨진다.
깨짐으로써 본분을 지키는
살아 있는 흙,
살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 깨진다는 것이다.
제 몫의 빵을 얻지못해
자리를 다투는 인간이여,
언제인가 썩을
한 개의 빵을 먹기 위해
너는 그릇을 움켜쥐지만
영원히 주어진 자리란 없다.
잔칫상의 타오르는 불꽃 아래서
스스로 깨지는 그릇 하나,
사기 그릇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