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만순이 / 고은

와우산 2012. 9. 25. 14:04

          만순이         고은

 

얼굴에 참깨 들깨 쏟아져

주근깨 자욱했는데

그래도 눈썹 좋고 눈동자 좋아

산들바람 일었는데

물에 떨어진 그림자 하구선

천하절색이었는데

일제 말기 아주까리 열매 따다 바치다가

머리에 히노마루 띠 매고

정신대 되어 떠났다

비행기 꼬랑지 만드는 공장에 돈벌러 간다고

미제부락 애국부인단 여편네가 데려갔다

일장기 날리며 갔다

만순이네 집에는

허허 면장이 보낸 청주 한 병과

쌀 배급표 한 장이 왔다

허허 이 무슨 팔자 고치는 판인가

그러나 해방되어 다 돌아와도

만순이 하나 소식 없다

백도라지꽃 피는데

쓰르라미 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