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눈길 / 신경림

와우산 2012. 9. 27. 11:15

       눈 길           신경림

 

아편을 사러 밤길을 걷는다

진눈깨비 치는 백 리 산길

낮이면 주막 뒷방에 숨어 잠을 자다

지치면 아낙을 불러 육백을 친다

억울하고 어리석게 죽은

빛 바랜 주인의 사진 아래서

음탕한 농짓거리로 아낙을 웃기면

바람은 뒷산 나뭇가지에 와 엉겨

굶어 죽은 소년들의 원귀처럼 우는데

이제 남은 것은 힘없는 두 주먹뿐

수제비국 한 사발로 배를 채울 때

아낙은 신세타령을 늘어 놓고

우리는 미친놈처럼 자꾸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