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아무 날의 도시 / 신용목

와우산 2012. 10. 6. 13:44

                 아무 날의 도시                   신용목


식당 간판에는 배고픔이 걸려 있다 저 암호는 너무 쉬워 신호등이 바뀌자
어스름이 내렸다 거리는 환하게 불을 켰다
빈 내장처럼

환하게 불 켜진 여관에서 잠들었다
뒷문으로 나오는 저녁

내 머리 위로도 모락모락한 김이 나는지 궁금하다 더운 밥이었을 때처럼
방에 감긴 구불구불한 미로를 다 돌아
한 무더기 암호로 남는 몸

동숭동 벤치에서 가방을 열며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내과술에 대해 생각한다
꺼낼 때마다 낡아 있는 노트와 가방의 소화기관에 대해

불빛의 내벽에서 분비되는 어둠의 위액들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나는
너를 잊었다 너를 잊고 따뜻한 한 무더기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한 바닥씩 누운 배고픈 자들이 아득히 별과 별을 이어 그렸을 별자리 저 암호는
너무 쉬워 신호등이 바뀌자
거리는 환하게 어둠을 켰다 빈 내장처럼

약국 간판에는 절망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