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 손택수

와우산 2012. 11. 14. 13:08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손택수

 

구두 뒤축이 들렸다 닳을 대로 닳아서

뒤축과 땅 사이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공간이 생겼다

깨어질 대로 깨어진 구두코를 닦으며

걸어오는 동안, 길이

이 지긋지긋한 길이

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나 보다

닳는 만큼, 발등이 부어오르는 만큼 뒤꿈치를 뽈끈

들어 올려주고 있었나 보다

가끔씩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기운다는 건

내 뒤축이 허공을 딛고 있다는 얘기

허공을 디디며 걷고 있다는 얘기

이제 내가 딛는 것의 반은 땅이고

반은 허공이다 그 사이에

내 낡은 구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