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문학기행 16 (신동엽문학관 - 충남 부여)

와우산 2014. 8. 5. 16:50

지난 주말 충남 부여에 있는 신동엽문학관 탐방과 간단한 부여관광을 겸한 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학관은 부여읍내 군청로타리 부근 시인의 생가옆에 지어져 작년에 공식

개관하였습니다.

 

문학관 입구입니다. 저 안쪽에 보이는 현대식 건물이 본관이고, 오른쪽 청기와집이 생가입니다.

원래 초가집이었는데, 복원할 때 관리상 편의로 기와로 덮었다합니다.

 

 

본관 근접촬영입니다.

문학관은 건축가 승효상 선생이 설계하였다 하는데, 저 같은 문외한이 봐도 멋진 건물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문학을 사랑하는 숙녀 네 분과 함께 하였습니다. 장산이가 오랫만에 호강하는 장면입니다.ㅎ

 

 

부여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신동엽시인은, 멀리 동학운동에서 시작하여 4·19 정신

에서 비롯되는 자유와 통일을 향한 시민정신을 드높여 1970년대 민족·민중문학으로

가는 주춧돌이 된 시인입니다.

 

 

조각가 심정수 선생이 제작한 시인의 흉상입니다. 숙녀분들은 이구동성으로,,,'와~~ 미남이네'

 

 

[시인의 생애]

1930.8.18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출생

1938~1953년 : 부여초등학교, 전주사범학교, 단국대사학과 졸업

1959년 :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1961~1969년 : 서울 명성여고 국어교사 재직

1963년 : 첫시집 '아사녀' 출간

1967년 : 장편서사시 '금강' 발표

1969.4.7 : 간암으로 별세(39세)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7년>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직설적인 정언(定言)이 명료한 가락을 타고 울리는 명작입니다.

많은 참여시들이 메세지만 강하여 작품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이 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호흡의 완급과 리듬의 강약이 실로 절묘합니다. 절창입니다.

 

 

 

 

전시실 내부 모습입니다. 시인의 육필원고, 당시 시집들, 유류품 등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진달래 산천(山川)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고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엔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1959년)
 

 

이 시는 신동엽이 부소산 장군바위에 올라 우연히 한 시신(屍身)을 보고 썼다합니다. '잔디밭엔 장총을

버려 던진 채/당신은 잠이 들었죠',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산으로 갔어요' 라는 구절 등에서 빨치산

을 미화한다 하여 시인이 한 때 빨갱이로 내몰렸던 원인이 되는 시입니다. 그러나 신동엽은 사회주의자

가 아니라 평화를 구하는 중립(中立)의 아나키스트였습니다.

 

 

 

같이 간 어떤 숙녀분이 눈에 확 들어오는 좋은 글이라고 평한 작품입니다.

시! 사랑! 혁명! 간절하게 소망하지만 결코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예사롭지 않네요.

 

 

두 동으로 이루어진 시인의 생가 일부입니다. 시인이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곳입니다. 다른 사람

소유로 되어 있던 집을 시인의 미망인 인병선여사가 되사서 수리한 후 군에 기증하였다합니다.

 

 

나성터 금강(백마강) 기슭 한켠에 서있는 시인의 시비입니다. 동료 문인과 후배들이 주머니를 털어

세웠다하는데, 원래 부소산에 세우려 하였으나 일부 과격한 반공주의자들의 반대 때문에 여기에 세워

졌다합니다. 바로 옆에 '반공애국지사추모비'가 높다랗게 서서 짓누르고 있기 때문인지 시비가 퍽이나

고달파 보입니다. 비양에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는 '산에 언덕에'가 새겨져 있습니다.

 

 

   산에 언덕에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신동엽의 시들은 조국의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 곧 외세와 분단 그리고 부패한 권력 따위

를 걷어치우고자 하는 큰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시는 온통 향그러운 흙가슴으로 지어졌

습니다. 껍데기와 싸워 나가는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그의 노래는 다시 살아나고

습니다. 그는 우리들의 영혼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신동엽문학관 팸플릿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문학관과 시비를 구경하고 구드래나루터 인근에 있는 맛집 '구드래돌쌈밥'

에서 돌쌈밥으로 점심을 해결하였습니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양이 엄청 많아 숙녀분들은 반이

상 남겼습니다. 친구님들이 혹시 가게 되면 사람수에서 1인분 정도 줄여서 시키세요.

 

 

 

식사 후에 우리 일행은 부소산성에 올랐습니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도성으로서, 평시

는 왕궁의 후원이었으며, 전시에는 최후 방어성으로 이용되었다합니다. 삼천궁녀가

치마를 뒤집어 쓰고 뛰어내렸다는 낙화암과, 목숨을 바친 백제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고란사를 구경하고 나루터로 내려와 황포돛배(실은 전기모터유람선)를 

타고 백마강을 수상유람하였습니다.

 

 

 

국보 9호 정림사지5층석탑입니다. 1500년전 백제 사비성 시대 가장 큰 절인 정림사 경내에 세워진 석탑

입니다. 현존하는 국내의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백제의 이미지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균형 있는 비례감이 특징인 이 탑은 백제의 깔끔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궁남지(부여서동공원) 구경 갔더니 연꽃은 거의 졌고, 부여서동연꽃축제의 잔재만 볼 수 있었습니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 때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으로, 매년 7월 축제기간 동안 백련, 홍련, 수련,

가시연 등 10만여평 50여종의 다양한 연꽃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합니다. 안 가본 진사들은 한번

쯤 방문하면 좋겠네요. 숙녀분들이 백제시대의 리무진을 타고 멋진 포즈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뒤에 용을 품었다는 포룡정과 연결다리가 보입니다.

 

 

오늘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신동엽문학관 탐방을 문학을 사랑하는 회원들과 함께 하여

무척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맛난 간식과 신선한 과일을 많이 준비하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며, 다음에도 함께 하는 문학탐방의 기회가 오길 기대합니다. 고마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