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이야기

아버님의 꿈

와우산 2004. 12. 6. 23:45

요즘 신문이나 텔레비젼에 보면 북핵문제때문에 조용한 날이 없는데, 북핵문제
해결이 세계평화나 한반도안정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지만, 6자회담이나 남북정상회담, 특사파견 같은 것들이 무슨 역학관계가 있
는지... 나같은 서민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도무지 현실감이 들질 않네.

부산에 계신 나의 아버님도 요즘 북한관련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보시면서 북핵
같은 거창한 이슈에는 관심이 없으실게 뻔하고, 혹시 북쪽 고향에 남기고온 당신
의 자식이나 손자가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화면에 보이지나 않을까하여, 이제는
침침해진 눈과 귀를 바보상자에 고정시키고 계실 것이다.

나는 이미 십여년전부터 아버님을 모시고 부산 서면에 있는 대한적십자사 부산
지사에 찾아가 남북이산가족 상봉신청서를 작성 제출하고, 정치꾼들의 부정기
적인 전략적 남북이산가족 상봉쑈가 열릴적마다, 혹여 찾아올지도 모를 수만분의
일의 확률에 지금까지 가슴 졸이며, 기적을 기다려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행운은 결코 찾아오지 않았고, 팔순에 접어드신 나의 아버
님께서는 기력이 점점 쇠퇴해져 가시고, 이제는 고향땅을 밟아보고 혈육을 만나
볼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잃어버리신 것 같다. 아니 포기하고 계신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남쪽과 북쪽의 권력자나 정치하는자들, 예술인과 연예인같은 문화계사람들, 그리
고 종교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무슨무슨 교류한다, 협력한다, 공연한다하며 가을
중 쏘다니듯 아래위로 분주하게 들락거리지만, 대부분의 일천만 일반이산가족들
은 한바탕 그들만의 단발성 정치쑈를 관람한 후, 넋나간 사람마냥 어리둥절하다
가 금방 그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곤 망연자실한다.

일찌기 나의 아버님께서는 일천만 이산가족들이 여러가지 여건상 모두가 한번에
다같이 만날 수 없다면, 서로가 우선 생사라도 확인하고 서신교환만이라도 하게
되기를 간곡하게 바라셨지만, 그런 당연해보이는 일들이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루
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하는 자들의 반인륜적인 행태와 비인도적인 사고에
절망감만 더할 뿐이다.

이제부터 혈육이산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정치꾼 같은 자들은 감히 이산의
슬픔을 말하지도 말라. 누가 나의 아버님의 슬픔과 한을 백분의 일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며, 어느 누구가 나의 아버님의 애절한 혈육상봉의 꿈을 짓밟을 수 있
단 말인가 ?

남북주민이 휴대폰 통화를 하고, 탈북자들의 입국이 러시를 이루며, 재주있는
사람들은 제3국에서 이리저리 혈육상봉을 하는 시대인데, 년말이 얼마 남지않은
요즈음, 못난 나는 아버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올해는 과연 무슨 일을 하
였던가 하는 자괴감으로 아버님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

오늘 어쩔 수 없는 현실과 나자신의 무기력함에 다시 한번 허탈해하면서도, 당신
께서 눈을 감으시기전에 한번만이라도 고향땅을 밟아보고, 고향에 두고온 혈육들
을 만나보고, 당신의 죄를 빌고 용서를 구하고져 하는 아버님의 꿈이 이루어지기
를 바라는 마음은, 비단 이 못난 불효자 혼자만의 기도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