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이른 새벽에 잠을 깬다. 새벽잠 없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새벽 4시 부터 눈을 뜨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자리에서 살며시 빠져나온다. 어제 문상에서 마신 술이 과했음인지
갈증이 극심하여 냉수 한사발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갑자기 들이닥친 친구남편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나는 상가 가득히 안개처럼 내려깔린 허무를 보았고, 내손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삼켜넘기는 그녀의 슬픔을 같이 울었지만, 다행히 그녀 한켠에 솟아올라 자리잡던,
결코 쉽지 않을 미래에 대비하려는 그녀의 각오에 안도하였다. 절박하면 용감해지는가?
지금까지 나는 늘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용기없는 나약한 초식동물이 되었고, 직선
으로 거침없이 공격하는 자가 쟁취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경험칙을 잘 알면서도,
언제나 분석하고 검토하며 타진하는 쪽에 섰으며, 결국 남보다 항상 한발 늦게 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가슴이 따뜻한 로맨티시스트도 아니며, 머리가 차가운 리얼리스트도 아니다.
그냥 중간쯤에서 적당히 머뭇거리다 어정쩡하게 양쪽의 흉내만 내보는 우유부단한 경계인
일 따름이다. 다빈치코드, 강산무진, 팀가이스트... 잠 못이루는 새벽에 연결되지 않는
단어의 편린들이 뇌속을 유영한다.
유치한 아마추어리즘과 비논리적 포퓰리즘이 차라리 현실적인가? 현실적이라는 단 한
마디로 모든 부조리가 양해될 수 있는가? 정의의 이름으로 구동하는 시스템은 신의 이름
으로 싸우며 쟁취하는 자들의 위선이다. 나는 이기적인 쟁탈전과 니전투구가 난무하는
추악한 게임의 아웃사이더임을 자인하며 변두리에 머물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도지는
고질병으로 뇌세포의 수가 극감하고 온갖 상념의 옆구리가 터져 그 내용물이 걷잡을 수
없이 삐져나온다. 나는 하염없이 가벼워진다. 쟁취할 수 없는 자유와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을 애써 외면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아무데나 눌러앉아 보기도하지만, 결국 밤이
오면 지겨운 패배자의 꿈만 꾸며 잠 못이룬다.
마음은 허전하기만 하고, 이따금씩 정체를 알 수 없는 중량에 짓눌리며, 아닌 척, 바쁜
척 수족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지만, 시간은 잔인하고 머릿속은 착잡하다. 지금처럼 이대로
흘러간다면, 올해도 작년처럼 별로 이루어놓을 것이 없을 터. 망쳐버린 빈약한 수확 앞
에서 하늘을 탓하는 농부처럼, 내가 나의 하늘을 원망한다고 이미 저질러진 실수와 나태,
그리고 숙명처럼 반복되는 미숙함과 무능이 면책될 수 있을까? 그렇다. 고독이다. 아무
에게도 말못하는 무기력이다. 경계인의 우유부단에 다름아니다. 쟁취하지 못하는 자에게
스며드는 영원한 허무다. 날개없이 추락하는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이대로 미쳐버리지나
않을까? 아니다. 혹시 추락하는 자가 더 편안한 것은 아닐까? 무엇이 진실인가? 혼란하다.
안개 내려앉은 축축한 유월의 새벽에, 한줌도 못되는 범부의 보잘 것 없는 사유가 캄캄한
도시의 늪을 유령처럼 헤맨다.
잠시 후 동이 트고 아침이 밝아오면, 나는 치유될 수 없는 권태와 무기력증을 몸 속
깊숙히 숨기고 위선의 가면을 덮어쓴 채, 훨씬 더 번지르한 가장과 비열한 음모가 활개
치는 일상을 향하여, 언제나 그렇듯이 짜증나는 정체속으로 세속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새벽일은 잊어버릴 것이다. 이제 또 떠날 때가 되었나보다. 새벽이
시리도록 아플때, 나는 목적지도 없고 일정도 없는 혼자만의 도보여행을 떠난다. 동반자를
갈구해 보지만, 어차피 그 길은 아무도 동행해 줄 수 없는 고독한 나만의 여행길일뿐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번에도 그길은 나에게 아무런 답도 줄 수 없는 힘겨운 여정이 될 것
임을... 또다시 도지는 갑오년 역마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