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국수 / 백석

와우산 2012. 10. 4. 13:05

                     국 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텀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베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기사

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옛적 큰 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바지기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끊는 아루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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