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걸레 / 고은

와우산 2012. 10. 5. 15:05

     걸레               고은


바람 부는 날
바람에 빨래 펄럭이는 날
나는 걸레가 되고 싶고
비굴하지 않게 걸레가 되고 싶구나
우리나라 오욕과 오염
그 얼마냐고 묻지 않겠다
오로지 걸레가 되어
단 한 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감방 닦던 시절
그 시절 잊어버리지 말자
나느 걸레가 되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더러운 한평생 닦고 싶구나


닦은 뒤 더러운 걸레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못 견디도록 헹구어지고 싶구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걸레로 태어나고 싶구나

'애송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의 서(書) / 강은교  (0) 2012.10.05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 이성복  (0) 2012.10.05
푸르른 날 / 서정주  (0) 2012.10.05
소년(少年) / 윤동주  (0) 2012.10.04
역(驛) / 한성기  (0) 201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