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 허연
늦겨울 짚더미에 불이 붙는다. 알맹이 다 털어내고 껍데기만 남은
것들은 타닥타닥 뼈 소리를 내며 재가 되고, 겨울은 그렇게 물끄러미
먼지가 된다. 그을린 소주병 몇 개와 육포 몇 조각이 누군가가 바로
전에 시키지도 않은 자기 변론을 했음을 알려준다. 짚불 앞에서 느끼
는 거지만 인생에는 지리멸렬한 요소가 있다. 깔끔하게 털지 못하는
그 무엇. 질척거리는 헛소리 같은 게 있다. 가늘고 긴 인생들에게 불
꽃 몇 개가 날아든다. 찬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헛소리가 다시 시작
된다.

이 사다리는 아니니까. 차례대로 하루씩 깊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들판은 황량하고 간
혹 그 들판 모퉁이에 모여서 술추렴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문득 불가사의한 풍
경이라고 느낀다. 하필 왜 저런 풍경의 파티를 벌인단 말인가. 그들의 내면은 바람 소리
들이 대신 수군대고 흩어진 지푸라기들이 대신 보여준다. 그들의 지난 일 년 살림이 참
나무 장작같이 괄지 못했고 짚불처럼 지리멸렬했음을 변명하는 파티일 것만 같다.
분명한 것은 추수할 것이 없는 생(生)의 국면이 있다는 것이다. 노력이 부족했다느니
따위의 하기 좋은 소리로 묶을 수 없는 운명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그러할 수
도 있고 명예가 그러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생의 허기진 폐허가 비리고도 쓸쓸히 부조(浮
彫)되어 있다. 울음도 사치일 것만 같은 음화(陰畵)가 아름답다.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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