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 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삸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이만큼 낮게 엎드려 몸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마음에게. 모든 것 드러난
그대로 몸에게 마음을 열고 처연히 한 채의 거울이 되어 누워 본 적이 있었던가.
바닥에 누인 몸을 바닥에 누인 마음에 비춰 본 적 있었던가. 애초에 몸도 마음도
넝마인데, 애써 포장하며 우격다짐으로 닦아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몸에게,
마음에게 가장 미안한 때가 있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애송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부러진 상처에게 듣다 / 길상호 (0) | 2014.05.15 |
---|---|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0) | 2014.01.18 |
겨울밤 / 박용래 (0) | 2013.12.04 |
별을 보며 / 이성선 (0) | 2013.12.04 |
오리는 순간을 기다린다 / 허만하 (0) | 2013.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