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노숙 / 김사인

와우산 2013. 12. 4. 13:47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 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삸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이만큼 낮게 엎드려 몸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마음에게. 모든 것 드러난 

그대로 몸에게 마음을 열고 처연히 한 채의 거울이 되어 누워 본 적이 있었던가.

바닥에 누인 몸을 바닥에 누인 마음에 비춰 본 적 있었던가. 애초에 몸도 마음도 

넝마인데, 애써 포장하며 우격다짐으로 닦아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몸에게, 

마음에게 가장 미안한 때가 있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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