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cafe '54년 말띠'방에 '이정'이란 닉네임으로 2004년 가입하여 문학방 등에서 간간이 좋은 글을 써왔던 이병룡 친구가 올봄에 그의 세 번째 시집 [외숙모]를 발표하고 나에게 시집 한 권을 보내왔네. 병룡 친구~ 고맙소. 그리고 축하하오. 오늘 한가한 휴일에... 한층 더 원숙해진 친구의 시를 감상하다가 '어머니의 꽃무늬'란 시를 읽고 여기에 옮긴다. 이 시가 실제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연령이나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가 하늘나라로 떠나신 친구의 모친에 대한 사모곡으로 보여,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나는 동병상련을 느끼며, 친구의 사모곡을 나의 간병기에 옮겨 고이 보관한다.
어머니의 꽃무늬 이병룡
알츠하이머 증세와 척추장애로 와병중인 어머니의 꽃무늬팬티를 빨았다
어머니의 은밀한 곳이 아들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치매증상은 점점 심해져갔으나
문풍지처럼 떨리는 기억의 울림으로
잉태의 설렘과 생명의 역사를 은밀하게, 명징한 꽃무늬로 새겨 놓으셨다
낡은 풍금 소리처럼 늘어진 팬티고무줄에
내 어릴 적 기저귀를 빨아주셨던 탄력이 남아있다
오래전에 완경(完經)했을 어머니의 꽃냄새가 아직도 배어있다
미처 발효되지 못한 삶의 입자가 물컹하다
이동식 변기에 앉아 기억을 배설하는 어머니의 소리가
독경 소리처럼 꽃의 단어로 내려앉았다
무늬 위에 무늬를 얹어 수없이 덧칠한 거친 질료의 배설물이 독한 냄새를 풍긴다
저 독한 냄새로 자식들을 향기롭게 키운 것이다
온 힘을 다하여 꽃무늬팬티를 빨아도, 세상의 치마가 여전히 짧아져도
어머니의 무늬는 길고 긴 꽃말로 남아 그 내력이 영영토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꽃 시절의 탁본을 간직하기도 전에 갑자기 하늘로 떠나신 어느 해 여름,
매달 찾아오는 붉은 신열마저 감추었던 어머니의 꽃무늬팬티 대신 민무늬 고쟁이를 마지막으로 입혀드렸다
꽃무늬팬티 시절보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던 시절이 더 슬펐을 어머니,
꽃무늬를 이탈하지 못한 그늘이 병원 밖 배롱나무 밑에 소복이 쌓여있다
'간병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콧줄을 자꾸 빼면 다시 끼운다고 어머니만 고통스러울 테니 (1) | 2020.08.01 |
---|---|
두 번째 비접촉 면회 (0) | 2020.07.29 |
드디어 비접촉 면회가 허용되었다 (0) | 2020.06.14 |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간접살인 아닌가? (0) | 2020.05.10 |
어버이날 화상통화 (0) | 2020.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