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노천 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 김광규, '밤눈'
연인이거나 벗일 두 사람은 눈 내리는 노천역에서 정처가 없다. 사랑과 연민을 지녔음에도 함께 깃들 곳이 마땅치 않다. "집"과 "방"은 그래서 마음의 품이고 상상의 둥지인데, 추운 바깥에서 떨면서도 이들은 서로를 위해 한사코 "바깥"이 되려 한다. 바깥이 없으면 "안"도 없다는 걸 아는, 따스한 바보들이다.
"행운"이 불운으로 바뀌어도 "기적"같은 희망을 품고, 바깥을 지키려는 목소리들을 응원하게 된다. 바깥이 있어야 안이 있다. 우리 모두가 바깥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갔다 올게." 바깥에 나갔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고 싶은 삶은, 재해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외침만이 아니라 모두의 바람이 되었다. 역병과 한파속에서, 바깥을 안전하게 지켜내야 한다. 이영광 (시인, 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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