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목에서 윤중호
어릴 때는 차라리, 집도 절도 피붙이도 없는 처량한 신세였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뜬구름처럼 아무 걸림 없이 떠돌다 갔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한때는 칼날 같은 세상의 경계에 서고 싶은 적이 있었다. 자유라는 말,
정의라는 말, 노동이라는 말, 그리고 살 만한 세상이라는 말, 그 날 위에
서서 스스로 채찍질하며 고개 숙여 몸을 던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귀신이 펑펑 울 그런 해원의 詩를 쓰고 싶었다. 천년의 세월에도
닿지 않을, 언듯 주는 눈길에도 수만 번의 인연을 떠올려 서로의 묵은 업장
을 눈물로 녹이는 그런 詩.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지게 작대기 장단이 그리운 이 나이가 되어서
야, 고향은 너무 멀고 그리운 사람들 하나 둘 비탈에 묻힌 이 나이가 되어
서야, 돌아갈 길이 보인다.
대천 뱃길 끊긴 영목에서 보면, 서해 바다 통째로 하늘을 보듬고 서서 토
해내는 그리운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
아무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 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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