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공중 / 송재학

와우산 2012. 1. 7. 20:23

                           공  중                        송재학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라 가끔 연약하구나 회색 깃털과 더불어 뒷

목과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온, 공

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

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새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

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되

겠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다 일몰 무렵 평

사낙안의 발묵이 번진다 짐작하자면 공중의 소리 일가(一家)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을 게다 공중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색

일가(一家)들이 모든 새의 깃털로 바빴기 때문이다 희고 바래긴 했지만

낮달도 선염법(渲染法)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공중이 비워지면서 허공

을 실천중이라면,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공중의 문명이라 곤줄박이의 개체수이다 새점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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