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 석우동에 위치한 노작 홍사용문학관을
방문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넉넉잡아 1시간 거리의 가까운 곳입니다.
문학관은 동탄신도시 라마다호텔 맞은편 노작공원 내에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지어져 있고 학생들의
교육공간, 어린이들의 견학장소, 인근 주민들의 문화공간과 쉼터 등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문학관 옆 소공원에 설치된 노작의 벽식 시비입니다. 같은 모양과 규모의 시비가 모두 4개 서있습니다.
사진의 인물은 홍사용선생님이랍니다.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
요마는..."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 은 <젖 주서요>하는 그 소리였지요마는, 그것은 <으아~> 하
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 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날의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
다 "무엇이냐" 고 쓸데 없는 물음질로 한참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
다도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빨가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
물을 따라서 발버둥질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 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스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
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면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리었소이다. 울음의 뜻을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은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흘 날 밤, 맨재텀이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이나 긴가
짜른가 보랴고 왕의 동무 장난군 아이들이 심술스러웁게 놀리더이다.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
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타
령을 따라 가다가 건넛 산비탈로 지나가는 상둣군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
로 응달 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면은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
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어라" 아- 그때
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
소이다.
누-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 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 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실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체하며 감중연(坎中連)하고 앉았더이다. 아-뒷
동산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는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다 왕의 나라로소이다. (1923)
노작의 대표시입니다. 시인은 왕이 되었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눈물 밖에 없는 눈물의 왕이 되었군요.
나라를 빼앗긴 지식인의 고뇌가 뼛속에 사무칩니다. 하지만 시가 너무 감상적이고 요즘의 산문시에
비하면 수준이 많이 떨어지지만, 근대시의 태동기를 지난 1920년대에 민요시가 많이 발표되던 당시로
서는 새로운 기법의 시로 평가받았을 것입니다.
<노작년보>
1900 (01세) 경기 용인 기흥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 남
1917 (17세) 휘문의숙 입학, 서울에서 하숙
1919 (20세)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3·1 학생운동 참여, 체포, 석방, 낙향
1922 (23세) 동인지 '백조' 창간호 발행, 본격적인 작품활동
1923 (24세) 극단 '토월회' 참여, 1회 공연 때 자금 조달
1940 (41세) 강경, 전주 등지에서 교편생활
1947 (47세) 폐병으로 사망
노작 홍사용(1900~1947)은 동인지 '백조'를 창간, 운영하면서 낭만주의 시를 주도하였고,
극단 '토월회'의 리더로서 신극운동에 참여한 문학사적으로 1920년대의 중요한 문인, 예술
가입니다. '백조'의 동인으로 노작과 함께 활동한 주요 문인으로는 소설가 박종화 · 현진건 ·
나도향, 시인 이상화 등이 있습니다.
2층 전시실 벽에 붙어 있는 시인의 젊은 시절 사진이데, 사진 옆에는 '선생의 올곧은 문사적 기개가
어둡고 추웠던 저 궁핍의 시대에도 선생으로 하여금 외홀로 형형한 호롱불을 켜드시게 하였다.
또 우리 신시와 신극운동의 선구자로서 척박한 겨레의 마음에 근대문화의 씨앗을 묻고 크게 싹 틔웠다'
라고 시인을 기리는 글을 적어놓았습니다.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만은 홍사용
그것은 모두 수수께끼였지마는 누님이 "모른다 모른다 하여도, 도무지 모를 것은, 사나이의
마음이야" 하시기에, 나는 "모른다 모른다 하여도, 도무지 모를 것은, 나라는 '나' 이올시다."
"찌르렁 - 하는 소리는, 건넛산이 우렁차게 울림이로소이다." 동내(洞內)의 큰 북이, 소리쳐
웁니다. 동내(洞內)의 두레패가, 자지러지게 놉니다.
밤! 밤! 회적색(灰赤色)의 이 밤! 이 밤에 이 밤에 아 - 이 밤에, 불이 또 붙는다 하오면, 두고
가신 님의 속이 오죽이나 타시오리까. 바지지 하느니, 시악시의 마음이로소이다. 불보담 더
달느니 나의 마음이로소이다.
장명등(張明燈), 발등걸이, 싸리불, 횃불, 불이야 - 쥐불, 듣기에도 군성스러운 퉁탕 매화포,
"가자 - 건너편으로" 마른 잔디밭에 불이 붙어 오니, 무더기 불이 와르르하고 일어납니다.
쥐불은 기어 붙고
노루불은 뛰어오고
파랑 불
빨간 불
호랑나비 나비 불
사내편(便)
계집애편(便)
얼씨구 좋다 두둥실
"아으 - 쥐불이야" "무어 막걸리 열동이?" 붉은 입술, 연시보담 더 빨간 청춘(靑春)의 뺨, 늙은
이의 눈짓. 선머슴꾼의 너털웃음, 용트림하는 젊은이 마음, 이 밤은 이렇게 모두 놀아나는데,
고개짓하는 홰나무의 속심을 누가 아오리까. 퍼지는 불길은 바다처럼 흐르고, 사람의 물결은
불붙듯 몰립니다.
벌불, 산불 주봉(朱鳳) 뫼의 붙는 불이, 괘등형(卦燈形)으로 치붙어...... 검은 하늘에는 날으
느니 불꽃, 또다시 퉁탕 매화포, 고혹(蠱惑)의 누린 내음새, 정열(情熱)에 타오르는 불길, 피
에 어린 눈동자 미쳐서 비틀거리고, 두근거리는 가슴은 울 듯이 "뛰자" "내 손을 잡아라 내 손
을" 손에 손길, 불에 불길 "치마꼬리가 풀어지네요!" "대수...... " "옷자락에 불이 붙네요!" "대
수...... " 아픈 발을 제기여 뜁니다. "잡아라 - 쥐불 쥐불"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오늘이
쥐날인데 이상한 꿈도 꾸었다고, 누님이 탄식하며 이야기 하시던.......
그것은 모두 수수께끼였지마는 누님이 "모른다 모른다 하여도, 도무지 모를 것은, 사나이의
마음이야" 하시기에, 나는 "모른다 모른다 하여도, 도무지 모를 것은, 나라는 '나' 이올시다."
문학관 1층에 있는 북카페 '청산백운'입니다. 소형 도서열람실인데,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더군요.
1층에는 '청산백운' 옆에 연극과 공연, 강의, 토론 등을 하는 소극장 '산유화극장'이 있고, 극장 출입문
좌측 공간에 노작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설명하는 게시물, 각종 원본자료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봄은 가더이다 홍사용
"거져 믿어라 "
봄이나 꽃이나 눈물이나 슬픔이나
온갖 세상(世上)을, 거저나 믿을까?
에라 믿어라, 더구나 믿을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풋사랑을
봄은 오더니만, 그리고 또 가더이다
꽃은 피더니만, 그리고 또 지더이다
님아 님아 울지 말어라
봄은 가고 꽃도 지는데
여기에 시들은 이내 몸을
왜 꼬드겨 울리려 하는냐
님은 웃더니만, 그리고 또 울더이다
울기는 울어도 남따라 운다는
그 설움인 줄은, 알지 말아라
그래도 또, 웃지도 못하는 내 간장(肝臟) 이로다
그러나 어리다, 연정아(軟情兒) 의 속이여
꽃이 날 위해 피었으랴? 그렇지 않으면
꽃이 날 위해 진다더냐? 그렇지 않으면
핀다고 좋아서 날뛸 인 누구며
진다고 서러워 못 살 인 누군고
"시절이 좋다" 떠들어대는
봄 나들이 소리도, 을씨년스럽다
산(山)에 가자 물에 가자
그리고 또 어데로
"봄에 놀아난 호드기 소리를
마디마디 꺾지를 마소
잡아뜯어라, 시원치 않은 꽃가지"
들 바구니 나물꾼 소리도
눈물은 그것도 눈물이더라
바람이 소리없이 지나갈 때는
우리도 자취없이 만날 때였다
누구는 일부러 웃더라마는
내가 어리석어 말도 못할 제
휠휠 벗어버리는, 분홍(粉紅) 치마는
"봄바람이 몹시 분다" 핑계이더라
이게 사랑인가 꿈인가
꿈이 아니면 사랑이리라
사랑도 꿈도 아니면, 아지랭이인가요
허물어진 돌무더기에, 아지랭이인 게지요
그것도 아니라, 내가 속앗음이로다
동무야, 비웃지 마라
아차, 꺾어서 시들었다고
내가 차마, 꺾기야 하였으랴만
어여쁜 그 꽃을, 아끼어 준들
흉보지 마라, 꽃이나 나늘
안타까운 가슴에, 부여안았지
그러나 그는, 꺾지 않아도
저절로 스러지는 제 버릇이라네
아그런들 그 꽃이 차마
차마, 졌기야 하였으랴만
무디인 내 눈에 눈물이 어리어
아마도, 아니 보이던 게로다
아그러나, 봄은 오더니만, 그리고 또 가더이다 (1922)
시인의 민요시 중에서 대표시입니다. 시인이 쓴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산문시보다는 이런 민요시가
차라리 더 나은 것 같네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소월과 만해의 시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노작의 시가
우리 근대 시문학사에 중요한 한 부분을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2층 전시실 내부입니다. 시인이 이끌었던 동인지 '백조'와 극단 '토월회'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전시물이 걸려 있었고, 시인의 대표시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문학관과 전시물, 주변 공원과 유적을 관람하는 동안 내내, 선생님의 문학세계가 비록
심오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강직하고 올곧은 선비정신과 애국심으로 평생을 살아
가신 선생님을 재평가하고 기리기 위한 화성시와 시민들의 노력과 정성을 엿볼 수 있었습
니다. 그들은 향토출신의 노작 홍사용선생님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수준 높은 문화시민의 모습에 장산이는 매우 흐뭇하였습니다.
2층전시실 한켠에 꾸며 놓은 노(老)노(NO)카페 올레입니다. 늙지 않는 카페라는 뜻인데요. 화성시가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찾기사업에 참여한 할머니들이 만들어주는 차가운 카푸치노(가격 3,000원)
한잔을 마시며 비치된 책들을 눈팅하노라니... 한껏 여유를 부려보는 근사한 주말 오후가 되었습니다.
노작은 일제 강점기에 단 한 줄의 친일 집필활동도 거부한 강직하고 고결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일제의 강압에도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점, 일제 말 친일 희곡 '김옥균
전'을 집필할 것을 강요당하였지만 거부하고 그 댓가로 주거제한을 당한 점, 경제적인 여건
이 허락된 지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유학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그의 생활신조와 성
품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화성시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된 노작의 묘입니다. 문학관 오른편으로 잘 정리된 길을 따라
산 속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공원 한켠에 소박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묘 옆에는 시인의 대표시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참 조용하고 공기도 좋았습니다.
화성시가 주최하고, 화성시문화재단과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주관하는 제2회 노작문학제가
10월 19일(토) 10시 30분부터 밤 8시까지 문학관과 주변 소공원에서 열린다네요. 공연,
문학특강, 연극공연, 시낭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계획되어 있고, 그날 13회 노작문학상
을 받는 손택수 시인과 그외 문인수, 이문재, 김경주 등의 유명 시인을 만나볼 수 있다합니다.
서울에서 가깝고, 주차비도 무료이고, 선착순으로 맛난 먹거리도 거져 나눠준다 하니 ㅎ...
문학을 사랑하는 친구님들은 한번 구경가보는 것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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