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곳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자리만 지키는 식물끼리의 만남은 무가치해 보이지만 그 사이에도
두근거림이, 깊은 교류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감히 생각할 수 없을 뿐이다. 외로움이 깊이
새겨진 시적 화자는 늪의 식물에서 샤워하는 연인을 연상한다. 모르는 슬픔이 나 몰래 옷을 벗고
서야 화자는 민낯으로 사랑을 한다.
'이달에 만나는 시’ 7월 추천작은 박진성 시인(36·사진)의 ‘물의 나라’다. 2001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 6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시집 ‘식물의 밤’(문학과지성사)에 실렸다. 추천에는 김요일
신용목 이건청 이원 장석주 시인이 참여했다.
박진성 시인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성장통을 호되게 앓았다. ‘나는 많이 아파.’ ‘이런
나를 누가 좀 알아줬으면 해.’ 시인이 집중하는 대상은 오직 자신뿐. 2년 전 산문집 ‘청춘착란’을
냈을 때 이성복 시인이 엽서를 보내왔다. ‘인생이 이미 병인데, 그 안에서 다른 병을 앓지 말기를.’
짧은 한 문장이 시인을 깨웠다.
“아플 당시에는 절박했지만 지나고 보니 엄살이었다는 걸 알았다. 예전엔 나의 아픔만을 토로
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희미하거나 안 보이는 것들의 아픔을 감지하려는 노력이 담겼다. 전체적
으로는 슬픈 정서지만 그 안에서 희망과 사랑을 얘기하려 했다.”
이원 시인은 “언제나 고통의 편이었던 박진성은 ‘애도의 윤리’에 이르렀다.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애도는 느낄 수 있을 뿐 만져볼 수 없는 시간들을 내내 만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김요일 시인은
“박진성 시인의 밤은 어둡고 슬프고 아프다. 하지만 밤과 밤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시인의 꿈과
소문, 목소리와 꽃들은 낯설고 새로운 몽환의 절경이 되어 어둠의 벽을 넘어서고 있다”고 평했다.
(조이영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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