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30일 토요일날, 일년에 단한번 열리는 그룹임원 친목모임에 참가하기 위하여,
나는 이른새벽 4시에 허겁지겁 일어나, 놀러가는건지 일하러가는건지 헛갈리며, 마지
못해 회사에 출근하는 기분으로 무교동 출발집결지로 향하였다.
첫날은 각자의 희망에 따라 골프 또는 배낚시중 택일하는 일정이고, 다음날 일요일에
는 희망하는 사람만 새벽에 어선승선을 하고, 모두가 함께 아침식사후, 소금강을 등
반하는 스케줄이다.
나는 첫날 일정으로, 나로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배낚시를 선택하고, 배낚시팀에
합류하니 예상외로 골프팀보다 인원이 훨씬 적어 의아해한다. 볼이 안맞아 놀러가서
까지 스트레스받기보다는 살아서 펄떡이는 놈을 건져올리는 재미가 훨씬 나을텐데...
이십여명의 골프팀은 관광버스편으로 삼척에 있는 파인밸리CC로 향하고, 낚시팀은 두
대의 승용차에 분승하여 양양 남애항으로 출발한다. 저녁에 남애항의 경북횟집에서
두팀이 합류하여 만찬회식을 한 후, 거기 숙소에서 하룻밤 숙박할 예정이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 강릉 초입 죽헌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로 진입,
북상하여 현남I/C에서 7번국도로 빠져나와 양양쪽으로 조금 올라가다보면 오른편쪽으
로 해안가에 작지만 조용하고 아름다운 포구 남애항이 모습을 드러낸다.
남애항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에 위치한, 양양군에서는 제일 큰 어항으로서,
동해안 대부분의 포구가 그러하듯이 수채화처럼 조용하고 깨끗하며, 부근의 남애해수
욕장과 함께 동해일출, 배낚시로 매니아들에게 잘 알려져있다.
남애항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식사때까지 시간이 남아 남애항을 잠깐 구경한다. 이곳
방파제 입구에는 1984년 배창호감독이 영화 "고래사냥"을 촬영한 곳이라는 기념비가
서있다. 오늘은 바람이 조금 불어 잔물결이 일렁이지만 물이 맑아 얕은 곳은 물및바
닥이 보인다.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와 아낙, 명태를 널어 말리는 아낙, 대구새끼와 오징어를 손질
하는 아낙들은 한가롭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생업과 연관되어있어선지 그 손길이
무척 분주함을 알 수 있다.
남애회센타 끝집에 "처녀횟집"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그밑에는 "조개탕 무료 써비스"
라고 적어놓았다. 처녀와 조개탕...??? 남자손님들이 많이 찾을 것 같다. 점심으로
숙소아주머니가 내놓는 맛있는 소면으로 요기하고, 낚시팀 8명은 해경초소에 신고한
후 준비된 소형낚시배를 타고 앞바다로 나간다.
나는, 배낚시라고는 7~8년전 이맘때쯤 이웃가족들과 인천앞바다의 덕적도로 놀러가서
우럭낚시를 딱 한번 해본 경험이 고작인, 그야말로 낚시에 문외한인 사람이다. 그래
도 나는 마른땅낚시에는 제법 소질이 있는 편인데... 꼭 물고기만 낚아야 낚시인가 ?
선장은 도다리(가재미)주낚채비를 갖추어놓았고 우리는 혼무시(갯지렁이)끼우는법과
낚시줄 드리우는법등을 간단히 교육받는다. 선장이 데려다주는 포인트에 도착하자마
자 일행은 남순이 엉덩짝만한 도다리를 건지는 꿈을 꾸며 낚시를 내린다.
나는 낚시경험이 적어 손끝에 전달되는 고기의 신호를 잘 알아채지 못하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줄이 약간 무겁다싶어 끌어올리면 한꺼번에 두마리씩 물려올라온다(바늘
이 두개임). 고기들도 부부간, 형제간, 애인간에 같이 다니면서 먹이를 찾는가보다.
낚시 던져놓고 이스리 한잔하고, 다시 끌어올리면 물려올라오고... 일행은 4시간정도
낚시하여 참도다리 100여수이상을 건져올렸다. 갑판에서 선장이 즉석으로 썰어주는
도다리세꼬시를 안주로 이스리를 마시니 별로 취하지도 않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
겠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선장에게 이스리 한잔 권하니 안마신단다. 육지의 자동차운전자와 마찬가지로 배의
조타수도 해경으로부터 간혹 음주단속을 받는단다. 일행은 망태기에 잡은 고기를 가
득 싣고 서산으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포구로 귀항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인지 몰라도, 처음에 주최측으로부터 친목모임에
참가희망자는 신청하라는 통지를 받았을때, 나는 주말에 한이틀 푹 쉬고 싶어, 불참
하겠다고 통보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높은사람한테 딸랑딸랑 눈도장도 찍어야겠고,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나의 모습을 연출하여 보여주어야겠다는등, 여차여차한 사유로 자의반타의반 오게 되
었고, 막상 이렇게 나와서 바깥공기를 쐬다보니 정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낚시를 마치고 골프조가 이곳으로 도착할 저녁시간까지 자유시간이라, 사람들은 남애
항의 생소하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어촌풍경들을 여유롭게 둘러본다. 갈매기는 끼룩
끼룩 날아다니고 조용한 포구의 한가로운 여행객들... 평화로운 모습이다.
나는 혹시 운 좋으면 객지 바닷가에서 남순이라도 만나는 행운을 얻을까하여, 안테나
를 최대한 높이 세우고 이곳저곳 어슬렁거려보았지만,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따라
혼자서 왔다리갔다리하면서 고독을 씹고있는 이쁜 남순이는 눈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네.
저녁 7시경에 골프조가 도착하여 경북횟집에 모두 모여 싱싱한 횟감으로 만찬회식을
가졌는데, "위하여"를 외쳐가며 폭탄주가 몇순배 돌고나니 좌중은 왁자지껄하고 분위
기는 화기애애하여 친목모임답다.
숙소에 돌아오니 제일 높으신분이 참가자 전원에게 고스톱밑천하라고 빳빳한 배추잎을
각각 30장씩 하사하신다. 일행은 고스톱, 포커, 마작팀등으로 삼삼오오 나뉘어져 밤늦
도록 게임을 즐기고, 자정경에 술이 부족한 사람들이 한잔 더 한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새벽 2시경까지 포커게임을 즐긴다.
새벽승선을 위하여 새벽 4시에 기상해야하니, 지금부터 두시간이라도 자두어야한다.
"멀미를 하는 분들은 붙이는 멀미약을 승선 최소 4시간 전에 부착하고 눈에 접촉되지
않도록 주의바라며, 특히 전날 음주나 공복에 승선시 멀미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바란
다"는 주최측의 안내가 생각나, 키미테 붙이는 것을 잊지 않고 잠자리에 든다.
새벽승선. 새벽 4시에 아직 술이 덜 깬 상태로 힘들게 기상한다. 대충 씻고 뜨거운
라면국물로 속을 푼 후, 단 몇시간동안이지만 동해안의 어부가 되어보기위하여, 준비
해간 방한복, 방한모, 장갑등 채비를 차리고 일행과 함께 선착장으로 향한다.
깜깜한 새벽에,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새
벽승선자 십여명은 고기잡이 나가는 프로어부들과 함께 그들의 고깃배를 탄다. 학창
시절에 탄광실습 나가서 아마추어 광부가 되어 본 적은 있지만, 어부체험은 오늘이
처음이다.
나는 부산 해운대에서 태어나 백사장, 미포, 청사포등 갯가를 놀이터로 삼아 유년기
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건설회사에서 직장생활하면서도 어청도, 광안대교, 거금대교
등 수많은 해상공사에 참여한 바 있어, 바다와 친숙하며 물길을 겁내지 않는 편이다.
우리가 탄 19톤급 어선은 모든 출항준비를 마치고 남애앞바다 정치망어장을 향하여
불을 환하게 밝히고 출발한다. 뜻밖에 새벽바람이 그다지 차지 않아 다행이다. 그물
올리는 작업을 도와주겠다고 우리가 어부들에게 제안하니 다친다고 한쪽구석에 모여
서 구경만하라고하네.
칠흑같이 캄캄한 바다로 30분정도 나가자 배는 어장에 다다른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것 같은데 자기들이 할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듯이, 어부들이 닻을 내리고, 윈치
를 작동시키고, 미끄러운 갑판위를 이리뛰고 저리뛰고 전광석화같이 움직이니, 갑판
위는 총성없는 전쟁터다. 담배 한대 필울 새도 없이 전원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
이는데, 손발이 척척 맞는다.
드디어 정치망그물을 걷어올리니 엄청나게 많은 각양각색의 고기들이 그물속에 갇혀
있다. 어종은 주로 히라스(방어), 오징어, 고등어, 연어등이다. 횟집에서 몇만원하는
커다란 자연산히라스가 어창이나 갑판에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고기 귀한 줄 모르겠다.
새벽공기가 차지만 어느덧 그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건설현장에서 일꾼
들에게 조금만 과하게 일을 시키면 힘들어 못하겠다고 아우성인데, 여기 어부들이 일
하는 모습을 보니 공사판일은 아무것도 아니네. 어부들은 기본급에 더하여 어획량에
따른 고기판매배당금을 추가로 받기때문에 일단 고기를 많이 잡아야 수입이 커진단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갈매기떼 수백마리가 끼룩거리며 배주위를 맴돌다가 버려지는 작
은 고기들을 낚아챈다. 갈매기들은 잠도 안자나 ? 오늘따라 수평선에 옅은구름이 제
법 드리워져있어, 그 유명한 남애항일출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아침 8시경 모든 작업을 끝낸 후, 잡은 고기를 가득 싣고 갈매기떼에 둘러싸여 개선
장군처럼 포구로 들어와 경매장앞에 배를 대니, 많은 사람들이 우리배의 고기를 경매
받으려고 와글와글 기다리고있네. 우리가 횟집이나 시장에서 사먹는 고기가 여기서는
그 반의반값이하로 경매되고있어 놀랜다.
오늘 우리배에서 건진 고기중에 난생 처음 보는 희안한 놈을 보았는데, 무게가 이삼
십키로는 나갈 것 같은 정말 묘하게 생긴 커다란 놈이다. 한 선원에게 저게 무슨고기
냐고 물었더니 "개복치"라 하네. 세마리 잡았는데 마리당 팔만오천원에 낙찰되더라.
단한번의 귀하고 즐거운 선상체험이었지만, 내가 만일 저 어부들처럼 고기잡이를 생
업으로 하여 매일 새벽 일터로 나가듯이 바다로 나가게 된다면, 일하러 산에 올라가
는 기분과 운동하러 산에 올라가는 기분이 다르듯이, 오늘처럼 꼭 즐거운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진부에서 특별히 가져온 소머리국밥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소금강등반을 위하여 모
두 소금강입구로 이동하였다. 말이 등반이지 소금강매표소에서 구룡폭포까지 올라가
는 소위 실버유람코스다. 소금강은 오대산국립공원의 큰 줄기로 원래의 명칭은 청학
산이었다한다.
사람들은 과음하였고 잠이 부족한데다가 체력소모가 많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느
라 몹시 힘들어한다. 소금강매표소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나니 연장자를 위주로
절반정도의 사람들이 등반을 포기하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서 막걸리판을 벌인다.
웬 술을 그렇게나 마셔대는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오랫만에 가져보는 과중한
업무부담으로부터의 일탈을 한껏 즐기나보다.
나를 포함하여 나머지 십여명은 왕복 두시간코스인 구룡폭포를 구경하려고 비틀비틀
출발하였으나, 절반도 못가서 모두 헥헥거린다. 우리는 중간지점에 있는 금강사에서
보고용 증명사진을 몇장 박은 후, 누군가가 그만 하산하자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모두들 기다렸다는듯이 동의한다.
내려오는 길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산과 계곡의 모습을 살펴본다. 옛날 율곡선생이 이
곳에서 입산수도할 때, 모양이 꼭 금강산같다고 하여 작은금강산이란 뜻의 소금강이
라 이름하였다하는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늦가을 단풍숲의 아름다운 경관이 모
두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무릉계곡의 물이 워낙 깨끗하고 주위산의 절벽과 단풍이 아름다운데다 계곡에 널려있
는 멋진 우유빛 화강암바위들이 오랜 세월동안 계곡물에 원마되어 기묘한 형태로 조화
를 이루고있으니, 바로 이런 곳을 두고 율곡선생이 소금강이라 불렀던 것 같다.
우리는 정오경 하산하여 소금강입구 털보네식당에서 맛있는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요기
를 하고, 모두가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쳤음에 안도하며 귀가길을 서두른다. 일행은
주최측에서 준비해놓은, 횟감과 해산물이 가득찬 아이스박스 한통과 마른오징어 세축
과 여러가지 건어물이 든 종이가방 하나씩을 선물로 받고 흐뭇해한다.
이번 모임에 함께한 사람들은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까지의 중장년들로서,
하는 일이 힘들다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겁나고 하던 일을 정리하기에는 아직 이
른 애매한 나이들인데,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깨의 짐이 천근같이 무거운 사람들이다.
지금의 자리에서 조기에 탈락하지 말아야함은 물론, 지금의 위치에서 자기의 사회적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이 나이에 효율 안나는 영어회화를 배운
답시고 새벽반에 뛰어다니는등, 무슨짓이라도 해야하는 절박한 입장이다.
위로 올라갈 자리는 한정되어있는데, 밑에서는 유능한 후배들이 끝없이 치고올라오니,
예전에는 아랫배가 적당히 나오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면, 사장감이라고 부르면서,
관록이 붙어 중후하고 멋있다고들 하였는데, 요즈음은 5학년만 되면 단지 나이를 먹었
다는 죄로 밖으로 밀려나는 사태를 걱정해야하는 가련한 처지이니...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5학년이 되면, 우짜든동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고, 뱃
살을 빼고 지겨운 머릿칼염색도 게을리하지 못한다. 퇴근후에는 제몸이 망가지는 억
지춘향 술상무도 마다하지 않지만, 아무리 그래봐도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눈물겹
도록 애처로운 민간기업의 시한부 인생이다.
이번 모임에 즐거운 시간을 같이 보낸 모든 사람들이 아무쪼록 내년에도 별탈없이 웃
는 모습으로 다같이 만날 수 있게 되어야할텐데... 부디 잘리지 말고... 년말 서슬퍼
런 칼바람에 무사히 잘 버틸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2004. 11.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