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이 돌고 있다 송찬호
역병이 돌고 있다 멀리서 목탁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모두들 서둘러 귀가하고
문을 닫아 걸고 귀를 막는다
병을 물리칠 수 있다면,
벽을 일으키고 그 절벽마다
칼에 힘을 주어 경을 새긴다
이윽고 얼굴을 깊이 가린 병자가 거리 저편에서 나타났다
얼마나 대가리를 쳤는지 눈 코 입이 문드러진
벌써 천 년 전에 유실되었던 목판본 얼굴
자기의 목을 쳐 내고 부처의 머리를 얹었다가 부처마저 쳐 내고......
그가 머리에 썼던 것을 벗었다
모가지가 떨어져 나간 혼 없는 육신의 목에 훤하니 달덩어리를 받쳐 얹고!
그가 옆을 지나갔다 달 가듯이!
칼을 뒤로 감췄다
멀리서 낭랑하게 경 읽던 소리
뚝, 그치고
그가 오늘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오늘 밤 그곳에도 달이 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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