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72 김영승
남들 안 입는 그런 옷을 입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왜 으스대는가.
왜 까부는가. 왜 뻐기는가. 왜 어깨에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가. 왜 꼭
그렇게 미련을 떨어야만 하는가. 하얀 가운을 걸치고 까만 망토를 걸치
고 만원 버스를 타 봐라. 만원 전철을 타 봐라. 얼마나 쳐다보겠냐. 얼마
나 창피하겠냐. 수녀복을 입고, 죄수복을 입고, 별 넷 달린 군복을 입고......
왼쪽 손가락을 깊이 베어 며칠 병원을 다녔는데 어떤 파리대가리같이
생긴 늙은, 늙지도 않은 의사 새끼가 어중간한 반말이다. 아니 반말이다.
그래서 나도 반말을 했다.
「좀 어때?」
「응, 괜찮어」
그랬더니 존대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존대말을 해줬다.
「내일 또 오십시요」
「그러지요.」 (1994)
'애송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순이 / 고은 (0) | 2012.09.25 |
---|---|
나 / 한하운 (0) | 2012.09.25 |
사수(射手)의 잠 / 박기영 (0) | 2012.09.24 |
해 지는 쪽으로 / 박정만 (0) | 2012.09.24 |
참회록 / 윤동주 (0) | 2012.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