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기

나는 그만 울컥하였다

와우산 2019. 9. 9. 22:07

(2019. 09. 08, 일)

오랜만에 어머니와 제법 긴 시간 동안 대화하였다. 저녁식사 후에 살짝 잠드시기에 가볍게 안마를 해드리려고 하는데, 기척에 바로 잠을 깨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이만큼이라도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맙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기진맥진하여 종일 잠에 취해 있었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조금씩 호전되어 가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가 침대에 누운 채로 나를 쳐다보면서,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어라. 배고프겠다.' 하며 걱정하길래, 나는 그만 울컥하였다. 나의 휴대폰에 저장된 당신의 증손녀 나윤이의 귀여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니, 가만히 미소 짓는다. 내가 어머니에게 하나하나 천천히 물어보니, 당신 이름은 이영희... 아들 이름은 김창정... 낮에 작은아들 김용정이와 며느리 이상미가 다녀갔다고 똑똑하게 대답하시네.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이름을 물어보니 이건 나윤이, 이건 종은이, 이건 ㅇㅇㅇ이라고 잘도 알아맞히신다.

 

(2019. 09. 09, 월)

간호사님 말로는, 어머니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운을 차려가고 있다고 한다. 저녁에 식후 혈당을 재어보더니 500이상으로 매우 높게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주무시려고 하지 않고, 표정이 또렷또렷하다. 팔다리 운동을 시켜드리고, 마사지를 해 드리니, 시원하다고 좋아하신다. 나더러 '내일 서울에 가느냐?'라고 물어보길래, '엄마가 아직 몸이 덜 나아서 못 갑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저녁 7시가 되니, '이제 그만 집에 가라.'라고 말씀하신다. 많이 좋아지셨네. '집에는 누가 있느냐?'라고 묻길래, '나 혼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의아한 표정이 된다. 아마도 당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당신 집의 아기들을 생각하는 것일 게다. 어쨌든 오늘은 저녁식사 후 안 주무시고 7시가 지나도록 또렷또렷하니, 내 기분은 좋은데, 왠지 짠 하고 또 울컥해진다. 내가 너무 감상적인가? 병실을 나오다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어머니 쪽으로 돌아보니, 놀랍게도 어머니는 가만히 누워 내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내가 손을 흔드니, 어머니도 같이 손을 흔들어주신다. 정말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