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이야기

어머니의 두손을 꼭 붙잡고

와우산 2004. 1. 12. 23:11

1950 년 겨울  

이른바,  1.4 후퇴

북쪽끝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던 국군과 연합군은

인해전술로 잘 알려진, 중공군의 강력한 동계반격에 밀려

전열을 재정비할 겨를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않았습니다


일제 식민치하에서 이십년을 참으며 기다리셨고

공산 독재치하에서 오년간을 버티셨던 아버님은

불과 며칠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방과 자유 그리고 통일의 부푼 꿈에 가슴 설레며

온가족이, 온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자유롭게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무척이나 좋아하였건만...


개마고원의 두메산골,   함경남도 풍산군 풍산면 암흥리

외진 산간마을의 살아남은 젊은이들은

이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습니다

남느냐 ?  떠나느냐 ?

남아서 인민해방군에 끌려가 공산 침략군이 되느냐 ?

그들을 피해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피난길에 들어서느냐 ?

결국, 암흥리의 많은 젊은이들은 자유를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날따라 함박눈은 왜 그리도 펑펑 쏟아지는지...

이제, 이별까지 남은 시간은 1 시간 남짓

지금 떠나보내면 다시는 못볼지도 모를 아들앞에서

늙은 홀어머니는 눈물도 말라버렸습니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누가, 무엇때문에 하는 전쟁인지도 모르고

그런 것을 알 필요조차도 없는 늙은 어머니는

그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들의 두손을 꼭 붙잡고

미어지는 가슴으로 한없이 우셨습니다

늙은 홀어머니의 오직 하나의 바램은

"부디 내 자식 죽지말고 살아서 몸성히 빨리 돌아오너라"


어머니는 아들이 내려갈때 양식으로 쓰라고

아껴두었던 좁쌀을 눈물과 함께 무명포대에 고이 담아

등에 짊어질 수 있도록 멜빵까지 만들어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곤 동구밖까지 따라나와

떠나가는 아들의 희미한 뒷모습이

산등성이를 돌아 사라진 한참 후까지 그대로 거기에 서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 아들 다시 못봐도 좋으니 어디서든 살아만 있게 해주소서"


소읍 풍산에서 피난배를 탈 수 있는 흥남부두까지는

눈 덮인 산길로 약 150 Km

건장한 장정이 꼬박 보름을 걸어야 하는 거리입니다

이번 배가 마지막 배입니다    낙오는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하기에 어쩔 수 없이

노약자나 부녀자, 어린이들은 고향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아들이나 남편, 아버지가 자유를 찾아

어쩌면 죽음을 피하여란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쨋든 고향을 떠나야 한다면

그들은 서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아버님은 당신의 어머니의 두손을 꼭 붙잡고 약속했습니다

"몇달안으로 꼭 살아돌아와 어머님을 편히 모시겠습니다" 라고


그리곤, 53 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가버렸습니다

이제, 그 아들은 그때의 그 어머니보다 훨씬 더 늙어버렸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께서 이제 더이상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날의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거나

아니면, 당신께서 그날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는 날이

당신 생전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런지도 모릅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사랑하는 아내, 부모, 형제,자식을 생이별하고

매일밤 가슴앓이를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느 누가

저희 아버님의 슬픔과 아픔, 후회와 절망과 한을 알 수 있겠습니까 ?


매년 명절때가 돌아오면

저희 아버님은 더욱 말수가 적어지십니다

북쪽 고향에 남기고온

당신의 홀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며

가슴으로, 가슴으로

슬피 우시기 때문이겠지요

 


                                                    2004 년     설날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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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명절이 돌아와도 고향을 찾아갈 수 없는
가슴아픈 사연을 간직한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

 

모든 남북이산가족들이
누구나 쉽게, 자유롭게 서로 만날 수 있게 될 날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친구들 !
명절 잘 보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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