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 전 김훈의 첫 단편소설집 '강산무진'이 출간되었을 때, '언니의 폐경'을 비롯하여 거기에 수록된 중단편 8편 모두를 매우 인상깊게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언니의 폐경'을 다시 읽고, 역시 김훈은 우리시대 최고의 글쟁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성작가가 여성의 섬세한 심리와 여성의 몸과 생리, 여성주변의 내밀한 모습들을 그렇게 세세하게 잘 묘사할 수 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작가는 대그룹 고위임원이었던 남편과 사별한 오십대 중반(폐경기)에 들어선 언니와, 직장에서 능력있는 임원으로 인정받으며 개인적으론 젊은여자와 연애하는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한 오십대 초반의 동생 - 두 자매의 쓸쓸하고 허무한 삶의 모습을 화자인 동생의 입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
냅니다.
작가는 특유의 건조하고 냉정한 필치로(그래서 그의 글이 아름답습니다) 중년여성의 삶과 심리 묘사를 통해 스러져가는 사회의 약자(여성)들을 보듬어주고 있지만 결코 그들에게 동정을 보내 지는 않습니다(이혼을 전제로 별거중인 동생은 남편과 입사동기지만 일찌기 홀애비가 되고 출세 에 낙오한 외로운 약자인 남편의 부하직원과 연애함).
또한 작가는 그녀들을 공격하는 강자(남성)들과 그녀들을 옭아매는 사회적 관습(제사, 시댁행사, 장례식, 재산을 둘러싼 갈등 등등...)들을 향하여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 도 원망을 하고있지는 않는군요. 자매는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제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의 또다른 소설 '화장'에 나오는 중년의 남자주인공 오상무의 얼굴이 그녀들의 얼굴에 오버랩 됩니다.
그의 글은 간결하고 냉정하며 아름답지만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허무하군요. 그 인물들 대부분이 우리 또래의 중년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실감나게 다가오는가 봅니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소설속의 인물이 된 듯 합니다. 동병상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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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이가 직장을 찾아 남쪽 멀리 낯 선 곳으로 내려온지 벌써 넉달이 되었습니다. 처음 한달 동안은 적응하기가 너무 어려워 보따리 다시 싸서 서울로 올라가버릴까 하고 여러번 망설이기도 하였습니다만, 이제는 객지생활에 적응도 제법 되었고, 무엇보다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바쁘고, 회사도 점점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라, 지금은 그냥 눌러앉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회사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생활하는데, 22평 아파트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군요. 난생 처음으로 세탁기도 돌려보고, 가끔씩 청소기도 돌리고... 아침식사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직접 만들어 먹습니다. 나이 들어 혼자 살아보니 좋은 점(?)보다는 불편한 점이 훨씬 많네요. 에구... 산다는게 뭔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할지... 잘하면 허무주의 소설이라도 한권 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랫만에 글 한편 올린다는게 어찌 하다보니 궁상맞은 신변잡담만 주절주절 늘어놓았습니다. 글이 삼천포로 빠져버렸네요. 하긴 여기서 삼천포가 지척입니다만 ㅎ 미안해요~ 날이 풀렸으니 사월부터는 연습장에 등록해서 운동이라도 좀 해볼까 합니다. 또 숙소에서 멀지 않는 곳에 '수양정'이라는 활쏘는 곳이 있네요. 주말에는 활도 좀 쏘아보며 심신수양도 해볼 요량입니다.
친구님들 ! 보고싶네요...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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