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고...

와우산 2008. 9. 2. 01:06

 

독서클럽의 9월 추천 장편소설, 김훈의 <남한산성>을 이번에 또 읽었습니다. 역시 단문 위주로
구성된 그의 문장은, 그가 5W1H에 능한 기자출신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간결하고 건조하며
냉혹합니다만 쿨한 멋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람이나 사물을 묘사하는 그의 문장 중에는 싯귀
같은 명문장이 많지요. 바쁜 현대인들은 길고 복잡한 것은 싫어합니다. 그것이 문인 집안에서
태어난 타고난 글쟁이 김훈의 소설과 문장이 우리에게 크게 어필하는 까닭입니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 <현의 노래>의 우륵, <남한산성>의 김상헌, 최명길, 인조, 김류, 이시백,

서날쇠, <화장>의 오상무 등 그의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또래의 중년남자들

인데, 우리 같은 중년남성이 그의 소설을 읽으면 동병상련지감을 느끼게 되며, 여성들이 읽는

다면 남편 또는 중년남자들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그들의 심리상태를 소상하게 알고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모양입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47일간 피난하면서 극한 상황
까지 내몰려, 결국 삼전도에서 청의 칸(황제) 홍타이지에게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며 치욕적인
삶을 구걸한다는 내용인데, 그 과정에서, 척화파(주전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갈등,

군병과 사대부와 민초들의 갈등, 왕과 신하들과의 갈등구조 등이 맞물려 소설적 흥미를 배가

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
니다'(김상헌).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

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최명길). 작가는 이 소설에서 한계상황에 봉착한

인간 군상들의 갈등과 대립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나로서는 감동이 약간 떨어지는

것은 웬일입니까 ?

 

예전에 나는 이순신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그의 동인문학상 수상작 <칼의 노래>를 읽고

가슴 찡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작가가 인간 이순신의 개인적인 내면의 모습과

인간적인 고뇌를 주조로 역사소설을 펼쳤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같은 역사소설인 이

소설에는 툭 불거지는 주인공이 없으며, 병자호란과 남한산성 농성 및 삼전도 굴욕이라는 역사

적인 사건을 놓고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대립과 갈등을 제3자의 입장으로 담담하게 바라보며

간결하고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것은 마치 시인의 태도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의 소설에 싯귀 같은 아름다운 문장이 많은가 봅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칼의 노래>보다는 <남한산성>의 감동이 덜하였는데, 그 까닭은, 예나 지금
이나 권력자나 정치인들이 갑론을박하는 행태와 그들의 사치스런(?) 고통 또는 그들의 영양가
없는 말장난들이 나에게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차라리 왕과 정치가들을 조연으로

하고, 언 땅에서 싹을 내미는 민초들의 고통과 삶을 강조하면서, 가공의 인물일지라도(소설은

허구임) 대장장이 서날쇠, 송파나루 뱃사공, 그의 어린 딸 나루 등을 더 부각시켜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면 훨씬 더 큰 감동을 가져왔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작품 속에서는, 정치가나 권력자들의 시선을 빌린 작가의 시선이 민초들을 향해 너무 낮게

깔리는 것 같군요. 물론 작가는 '그 시대에는 다 그랬다'라고 말하겠지만, 우리 시대의 또다른
거장 황석영의 시선과는 높이차이가 상당히 나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실제로 동서고금
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큰 화를 입는 것은 불쌍한 민초들입니다.

가진자와 권력자는 다 빠지고 불쌍한 민초들만 희생되며 그들의 놀음에 놀아나게 되는 것이지요.

 

각설하고... 작가는 이 소설에서, 거창한 주제나 인간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심오한 내용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쉽고 재미있는 멋진 소설을 쓴 것은 확실하며, 그래서 독자들은 그의 소설과

문장에 매료되는가 봅니다. 참고로 그가 어떤 인터뷰에서 한 말 한마디를 옮겨볼까요.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크 ! 장산이가 뜨끔합니다. ㅎㅎ 그의 거침 없고 당당한 모습과
생활태도, 직선적이고 리얼한 소설, 톡톡 튀는 미려한 문장은 그런 그의 평상시 생각과 자신있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끝으로, 문체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 뜻이 수줍어 은비한 문장, 말을 돌려서 우원한 문장, 말을

구부려 잔망스러운 문장,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심하게 꾸짖는 청의 칸이, 조선왕에게
보낼 국서를 작성하는 그의 신하들에게 지시하는 말을 옮겨봅니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이 말은 바로 김훈 자신의 문장 작성 철칙일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솔직하고 적극적인 작가, 김훈님의 더욱 다양하고 깊이있는(?) 소설과

아름다운 문장을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친구님들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