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하나코는 없다>를 읽고...

와우산 2008. 8. 1. 01:12

 

작가가 우리와 비슷한 연배이고 무게있는 동인문학상 수상작가라고 독서클럽에서 보내준
유인물 겉장 프로필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낯 선(정이현, 은희경도 낯 설지만),
최윤씨의 <하나코는 없다>라는 단편을 먼저 읽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소설속의 주인공이 남자이었으므로 작가를 남성으로 착각하였고, 그래서 왜 1
인칭 시점으로 쓰지 않고 굳이 '그'라는 표현을 빌려가며 3인칭 시점으로 썼을까 의아해
했지만, 나중에 최윤씨가 여류임을 알고서 그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ㅎ

 

스토리는, 주인공이 이태리 출장 중에 베니스를 찾아(사전에 계획되어 있었음) 예전에 같이
어울리던 하나코라는 여자친구를 찾게 되지만, 전화통화에서 하나코의 방문초대에도 불구
하고 그녀를 만나지 않고 서울로 되돌아온 후, 나중에 그녀가 촉망받는 디자이너로 성공해
고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물의 도시 베니스는 14년 전에 나도 인상 깊게 여행했던 멋진 도시라 그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소설 도입부에서 작가는, 중세 최고로 번창했던 그 당시 초일류의
국제 상업도시, 지금은 예전의 부귀영화를 뒤로 한 채, 물 속으로 침잠하는 듯 한 몸짓
으로, 조금은 우수어린 베니스를 멋들어지게 표현하고 있어, 나는, 기혼 남자가 벌이는
옛 여자친구와의 위험하지만 멋있고 짜릿한 사랑이야기 쯤으로 생각하고(그리 되었다면
삼류 통속소설이 되었겠지요), 금새 큰 호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결국 하나코(본명 장진자)가 장산이를 포함한 세상의 허망하고 개념없는 뭇 남성들에게
강력한 원투스트레이트 펀치를 보기 좋게 날린 셈입니다.

 

주인공과 몇몇 친구들이, 학창시절과 사회 초년병 시절, 하나코와 그녀의 한 친구를 옆에
두기 좋은 편안한 상대로, 심하게 말하면 데리고 놀기 좋은 부담없는 여자친구 쯤으로
가볍게 생각하였지만(우리 주위에는 그런 남자들이 없겠지요 ㅎ), 오히려 하나코는 사회적
경제적 역할을 핑계삼아 현실과 타협하며 안주하는, 사실은 허약하면서도 위선과 허풍으로
가득 찬 뭇 남성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조롱하듯 KO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작품에 작가의 페미니즘 성향이 잘 나타나있군요. 작가는, 자그마한 몸집의 하나코를 전면
에 내세우지 않고 주인공의 회상과 여정 속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더 강렬하게 우리 허우대 멀쩡하지만 비겁한 남자들의 급소를 쥐어박는군요. 사실
하나코가 직접 나서서 노골적으로 '니네 남자들은 도대체 뭐하는 인간들이야?' 하고 외친
다면 메세지는 강할지 모르겠지만 문학적 긴장감과 묘미는 반감하겠지요.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하나코와 만나는 도중에 각기 다른 여자들(돈 많은 여자 등)과
결혼하게 되고 그 결혼식을 하나코에게만 알리지 않았음을 하나코에게 사과했을때, 하나코
가 그들에게 하는 말을 끝으로 제 글을 맺겠습니다. "설마 결혼식 같은 것을 그토록 중요
하게 생각하는건 아니겠죠."

 

친구님들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밤, 편안하게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