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기

제18차 남북이산가족상봉 - 아버님을 기리며 (2)

와우산 2013. 2. 15. 21:04


   지성이면 감천인지... 아버님이 91세 되던 2010년 가을 제18차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에 북쪽으로 가는 방문자로 아버님이 선정되셨다는 반가운 통지가 날아왔다. 아버님은 생이별 60여년만에 북쪽 고향에 두고온 이젠 60대의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딸(이별 당시 7세)과 아들(유복자)을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 일간지 사회면에는 아버님의 가슴아픈 사연이 <남북이산가족 상봉 명단 100명씩 교환... 재회 앞둔 기막힌 사연들 - "배 속 아들을 60년만에 보게될줄이야">라는 제목으로 크게 실리기도 했었다.




   고령의 상봉자는 1명의 보호자를 동반할 수 있어 내가 아버님을 모시고 금강산엘 다녀왔는데, 세세한 만남의 사정이야 글로 남기려면 눈물로 얼룩진 수십페이지도 모자랄 것이지만... 고향에 두고온 코흘리개 어린딸과 아내의 배속에 잉태된 얼굴도 못본 아들을 60년만에 만나는 늙은 아비의 심정...

   우리는 너무나 반가웠고, 서로 살아있다는 안도감, 많이 울고, 서러웠고, 지난 사연이 기가 막히고, 연민, 후회... 그 당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북받치는 감정은 도저히 다 필설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버님에게는 자식들과의 상봉이 꿈만 같았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헤어지면 이젠 영영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우린 너무 서럽게 울었지만...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된 것은, 북에 남겨진 가족들이 배신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반동분자의 가족이라는 연좌제의 올가미에 걸려 강제수용소에 보내지지 않고, 그런대로 잘 살고있는 것 같이 보여 약간의 안도감이 든 사실이다.



금강산호텔앞 주차장.

키가 훤칠하신 아버님... 91세의 연세에 비해 정정한 편입니다.



피는 못 속이네요. 서로 첫눈에 알아보더라구요. 세분은 하관이 빠르고 눈썹 모양 등등... 딱 닮았는데,

외탁을 한 나 혼자만 둥글넙적한게 남의 식구 같습니다 ㅎ



60년만에 만난 아버지와 자식들...

물어보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뒤에 까만 양복 입고 서있는 북쪽 무서운 동무가 들을까봐... 소곤소곤 얘기합니다.



보위부원의 감시가 없는 호텔방에서의 개별상봉시간.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다시 헤어져야 하는 아버지와 자식들은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습니다.

서러워...서러워... 눈물을 닦고 포즈를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내가 '모두 웃어보세요'라고 주문하니 저런 표정이 나왔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래도 북쪽에 남겨두고온 두 자식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건재한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어, 그나마 마음의 짐을 좀 덜고 가실 수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든 극한의 역경과 고난을 헤쳐왔던 아버님... 후회와 자책으로 60여년을 살아오셨던 아버님... 강인하고 근면하며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셨던 나의 아버님... 법 없이 살 정도로 정직하고 예의발랐던 나의 아버님... 대쪽같이 곧았던 아버님... 자신에게는 지나치리만큼 엄격하셨지만 남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셨던 나의 아버님...

   우리 아버님 돌아가신지 한달 남짓... 오늘따라 아버님과 함께 보냈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