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기

나도 참 아둔하고 눈치없는 아들이다

와우산 2017. 9. 28. 22:28

   동생으로부터의 전화다. 요양보호사님으로부터 전화로 이야기를 들었다는데, 요양보호사가 아침에 출근해보니, 어머니가 집에 있는 둥그런 큰상을 펴놓고 밥, 국, 김밥, 반찬 등을 한상 가득 차려놓고, 그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한다. 그사람들이 오기로 했는데, 오시면 대접할 거라고 하셨단다. 그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으니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시더란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내려가 어머니집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거실에 국수, 김치. 반찬 등 7~8인분의 음식이 차려진 큰상을 펴놓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국수는 퉁퉁 불어터져 먹을 수 없을 정도이고, 다 식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웬 국수냐고 물었는데, 그때도 어머니는 손님 어쩌구 하시며 우물쭈물 대답을 잘 못하셨다. 그때 어머니는 얼마나 혼란스러우셨을까... 


   국수를 좋아하는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온다고 아들 먹일려고 차렸나... 그럼 당신과 나 먹을 것 두그릇이면 되지, 나머지 국수그릇들은 뭔가... 나도 참 아둔하고 눈치없는 아들이다. 그때 어머니의 그 이상한 행동을 치매와 바로 연결시키서 단정짓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쳐버렸으니... '설마 죄 없는 우리가족에게 치매가... 그래, 착한 우리가족에게 그런 끔직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거야...' 라고 미련하게 우기면서...


   어머니가 기억력에 문제가 조금 있고 가끔 엉뚱한 말씀을 하셔도 '설마 치매는 아닐거야' 하는 어리석은 생각이나 무사안일한 태도가 일을 키웠다. 어머니에게 이미 치매의 전조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온 가족에게 들이닥칠 골치 아픈 문제를 회피하려는 속마음이 있었던게지. 평균수명이 엄청 늘어난 지금, 치매는 이미 많은 가정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는데도... 바보같이... 피해보려고...


   어머니의 환시, 환청, 망상은 계속되는 것 같은데, 요즘 들어 배회는 하지 않으셔서 그나마 다행이다.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보아, 많이 외로우신 것 같다. 사람이 그리운게지... 이유야 어떻든, 병든 어머니를 내집에 모시지 못하는 이 못난 자식이 죄인이다. 자괴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