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입원하신 지 오늘로 24일째이다. 어머니는 여전히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몸 상태이지만, 오랜 입원기간 동안 담당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치료와 간호로 어머니에게 나타난 고염증수치, 폐렴, 고혈당 등의 위급한 내과적 증상은 많이 잡혔고, 비록 옆에서 누가 떠먹여 드려야 하지만 그래도 영양제 주사 없이 부드러운 죽으로 식사를 할 정도로 기력이 회복되었다.
오후에 설교수님이 회진 오셔서,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이제 백병원에서는 더 치료할 사항이 없으니 퇴원해도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어머니가 완치가 불가능한 치매와 만성적인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여서 추가적인 입원 치료에 제한이 따른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 같다. 어머니를 입원실이 부족한 백병원에 입원시킨 상태로 계속 치료할 수가 없다는 말씀인 것이다. 내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를 여기에 하루라도 더 머무르게 하고 싶지만, 건강보험공단의 지침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어머니 같은 환자를 보통 한 달 이상 입원시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교수님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하며 모레쯤 퇴원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병실을 나서면서 설교수님이 한 가지 당부하는데, '어머니의 현재 상태로 보아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면 절대 안 됩니다. 집으로 가면 매우 위험합니다. 적어도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는 요양병원에 꼭 모셔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고 밥도 떠먹을 수 없는 어머니의 몸 상태를 감안하여 동생과 함께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아무래도 어머니집 바로 앞에 있는 해운대성심요양병원이 우리에게 좋을 것 같다.
병원 내 입원실을 돌아다니는 이발사를 불러 어머니의 긴 머리를 깎아드렸는데, 그냥 남자머리로 쇼트커트를 하였고 염색도 하지 않았다. 여성스러운 모습이 지워진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당신은 미용실에 가서 파마도 하고, 염색도 하고, 화장도 하고, 밖으로 나갈라 치면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많은 것이 바뀌어져 버렸다. 당신은 얼마 전까지 집에서 지낼 때만 해도 당신의 아들에게만은 당신의 기저귀를 절대로 못 만지게 하였는데, 이제 아들이 어머니의 기저귀를 가는 건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저녁에 동생이 퇴근하고 병원에 들렀다. 내가 스스로 거동하기 불가능한 어머니를 간병하며 거의 한 달을 병원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동생이 주말이나 틈날 때마다 병원에 들러서 나를 교대하거나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밤늦은 조용한 시간에, 동생과 나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환자용 공용샤워장에 데리고 가서, 시원하게 샤워를 시켜드렸다. 모레 퇴원하여 요양병원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는 어머니는, 오늘부터 퇴원을 준비하는 셈이다. 머리도 단정하게 깎았고 샤워도 하였으니, 어머니도 오랜만에 개운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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