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기

당신의 내면에 당신의 아들을 불러들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와우산 2020. 4. 11. 19:06

동생이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어머니와 지난달 20일에 화상통화를 한 이후로, 나는 어머니가 너무 걱정되어 지금까지 줄곧 안절부절못하였는데, 여전히 코로나19 사태로 면회도 금지되어 갑갑하고 불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던 차에, 마침 오늘 병원 측과 조율이 되어 어머니와 두 번째로 화상통화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콧줄을 끼고 있었지만 예상외로 컨디션이 좋아 보였으며, 당신의 통화 상대방이 당신의 큰아들임을 바로 알아보셨다. 물론 간호사님이 서울 큰아드님과 통화한다고 어머니에게 미리 알려주었겠지만, 어쨌든 당신은 휴대폰 화상통화로 나를 알아보며 반응하였고, 서로가 미진하게나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기에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어머니는 그리 수척해 보이지도 않았으며, 콧줄 등으로 괴로워하거나 불편해하는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님 이야기로는 어머니의 각종 검사 수치가 정상범위 내로 들어왔다 한다. 혈당 측정치 110내외, 혈중 산소포화도 96% 내외, 혈액 염증수치도 정상으로 내려와 폐렴도 많이 좋아져 숨쉬기도 편하다 하네. 심장도 별 문제없고, 신장기능도 많이 좋아졌다 하고, 혈압 맥박 등 제반 수치도 양호하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나...ㅎ 콧줄에도 잘 적응하신 것 같고, 이젠 옆자리 침상의 할머니에게도 고개를 돌려 좌우를 둘러보며 관심을 보인다고 하니, 물론 나중에 또 어머니의 건강상태가 급변할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이나마 나도 두 발 뻗고 잠들 수 있겠다.

 

그렇지만 하나 안타까운 것은, 근래 들어 어머니가 병상에서 가족의 소식을 먼저 묻는다거나 아들이 보고 싶어 찾는다거나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일은 없다고 간호사님이 말씀하시네. 누가 아들과 관련된 화두를 던져주거나 또는 아들이 직접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의 내면에 당신의 아들을 불러들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가족들과의 장시간 관계 단절이 어머니의 치매를 급격히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제 당신에게 새겨진 사랑하는 아들의 이미지나 좋았던 기억 그리고 가족들과의 아름다웠던 옛 추억은, 아프고 힘들었던 모든 사연과 함께 당신의 뇌리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인생사 참으로 덧없고 허무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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